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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프신 부모님과 잘 살고 있습니다.

직장인 엄마 그리고 간병

by momhealer 2023. 12. 15.

딸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나는 엄마 간병을 위해 병원에서 일주일 중 3박 4일을 지내야 했기에,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했기에 나에겐 아픈 손가락인 딸이 벌써 중학교1학년이 되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 같이 저녁을 먹는 날인데 저녁을 먹자마자 씻지도 않고 침대에서 잠들었다.

피곤하겠지만 며칠 전 독감도 걸린 터라 씻지도 않고 잠든 것이 못내 불안해서 깨웠지만 못 일어난다.

아들이 동생을 찾기에 씻지도 않고 잠들었네... 했더니 동생방에 들어갔다가 동생핸드폰을 들고 나온다.

내가 엄마옆에서 자는 날에는 아들에게 막냇동생 핸드폰 너무 많이 안 보게 단속을 부탁하곤 했는데, 동생이

잠든 척한다고 생각했는지 내 책상옆에 두곤 씩 웃으며 나간다.

3시간 정도 지났나 방에서 나온 딸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왜 핸드폰 가져갔어?"

딸아이가 자는 동안 두어 번 알람이 울렸는데, 나름 저녁계획을 세워둔 딸은 9시까지 자버려서 계획이 틀어졌다며 속상해

짜증을 내더니 눈물까지 보인다.

엄마가 가져가고, 오빠핑계를 댄다고 생각하는지 외출한 오빠에게 까지 전화해서 오빠가 핸드폰 가져갔냐고 묻는 전화에 나도 황당해졌다. 자기 계획을 망친 분노는 자기 핸드폰을 마음대로 가져간 오빠에게 향하고 위로와 공감과 같이 비난해 주기를 바라는 딸아이는 거친태도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속이 상하기도 하겠지 싶어 딸방에 들어갔다가 난 침묵을 택했다.

침대 위와 바닥에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옷가지들, 책상 위 쓰레기와 먹다 남은 과자봉지들 그리고 던져놓은 가방과 의자에 앉아 짜증을 내며 울고 있는 딸을 보니 공감은커녕 쏟아져 나오려는 말들을 막아야 했다.

 

살다 보면 계획에 없던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원하지 않았지만 선택해야 하는 순간도 있고, 포기하기보단 그 상황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좋은 결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한다. 잠을 더 잤으니 시간만 뒤로 미루면 될 일인데...

아예 망했다며 다 포기하고 탓만 하고만 있는 딸을 보는 게 편치 않아서 그냥 놔두었다.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지.. 생각을 바꾸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나도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세월이 걸렸으니까. 생각을 바꿔서 받아들이는 과정이 3~4년이 걸린 듯하고, 아직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생각이 바뀌면 말하는 것이 바뀌고, 그럼 행동도 바뀌어 결과도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처음 병원생활 시작할 때는 엄마옆에 있으면 어린 딸과 대학입시가 코앞인 아이들 걱정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병실의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이 되었다. 또 갑자기 닥친 불행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맡게 된 간병생활에

몸이 고된 것보다 마음이 더 힘들었다.

지금 내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 거지? 석션이 의료행위라면서 왜 간호사가 하지 않고 내가 해야 하는 거지?

회사에 간병휴가를 냈지만 한 달밖에 안되는데 한 달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혼자 수입으로 가정을 꾸려가야 했기에 직장도 재수하는 아이와 고2딸, 그리고 초등학교2학년 막내까지 모든 게 뒤죽박죽

이였지만 더 암담한 것은 언제까지인지 기한조차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의 나는 피곤한 몸으로 집에 오면 나처럼 아이들을 챙기지 못하는 남편을 탓하고, 아이들에게 칭찬과 격려보다 부족한 부분을 얘기하며 잔소리를 하고 집안일을 하며 짜증을 냈다. 가족들에게 위로받고 싶었으나 나의 감정상태를 말하기보다 결과를 통보하는 식으로 전달했고 나는 

섬처럼 고립됨을 느꼈다. 엄마가 있었던 중대병원에서 방배동 집까지 헛헛한 마음과 몇 번이나 엎치락뒤치락하는 마음속

죄책감으로 집으로 가는 길을 걷고 또 걸으며 내 생각을 정리하려 애썼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집중했다. 엄마가 쓰러지고, 실려간 병원에서 수술 안 하면 사망하실 수 있다는 말에

얼마나 참담했는지, 그때 엄마를 이렇게 보낼 수 없다는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많은 시간이 남아있으니 나중에라도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고, 공부도 스스로 하는 것이니 맡기자.  엄마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취약한 시기이고 돌봄이 절실한 상태이니 일단 엄마의 건강회복을 최우선으로 하자. 현실을 받아들이고자  마음을 먹고도 현실에서 깨지고 또 다짐하고 사소한 일로 무너지고 다시 다짐하고.......

같이 살던 둘째 언니가 모든 일상생활을 접고 엄마옆에 딱 붙어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엄마를 보듬고 쓰다듬고 간호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심이 들었다. 특히 석션부터 상처부위 드레싱 등 처치하는 모습 속에는 우리 엄마는 내가 지킨다는 의연함까지도 느껴졌고, 차마 외면하고 싶었던 나에게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다. 

언니는 주변사람들이 언니에게 건네는 위로가 듣기 싫다고 했다. 네가 힘들어서 어쩌니부터 살만큼 산사람은 빨리 가는 게

낫다는 둥 주로 나이 드신 주위분들의 직설적인 이야기를 싫어했는데, 우리 엄마가 정말 헌신적인 분이셨기에 자식으로서 받은 것이 너무나 많아 아픈 엄마를 돌봐드리는 것은  당연한 거고, 반대상황이라면 우리 엄마는 자식에게 더 잘하실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또 내성적이고 깔끔한 엄마가 모르는 사람이 씻겨주는 것보다 자신이 씻겨드리는 것을 더 좋아하셨을 거라 생각하기에 모르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싫어했다. 지금도 언니는 엄마를 돌보는데 진심이고 엄마옆에서 웃는다.

처음 병원에서 나가라고 할 때는 이게 무슨 소린가 이해가 안 됐다. 치료가 끝난 것도 아니고, 더 나아진 것도 없는데

나가라니...

2년여 병원생활을 청산하고 집으로 엄마를 모셔오면서 현상유지만 하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고, 지금은

나이가 들면 질병과 노화로 언젠가 삶의 마무리는 죽음이고 이는 늘 우리 주변에 같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같이 있는 이 순간을 감사하는 것이고,  엄마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가족들 속에서 엄마의 마지막까지 지켜 드리는 것이다. 

파올라 레고/ family 1988

딸에게 내가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우리 집의 환경에서 나름 또 배우는

것이 있을 거라 생각하며 나의 행동에서 보여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