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잉태되는 순간부터 돌봄을 받고, 돌봄을 하며, 생을 다할 때까지
돌봄을 주고받는 관계가 이어진다.
또 언제든 아플 수 있고, 주위에 아픈 이들이 있으며, 질병에서 회복될때도
질병에 대한 처치뿐 아니라 돌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회복정도도 달라진다.
나 스스로 돌봄에 대해 자각하게 된 계기가 있는데 바로 내가 코로나에 걸렸을 때다.
병에 대한 질병치료도 중요하지만 심리적 안정감과 위로, 공감대형성도 질병치료에
중요한 요소로 들어가는구나 느끼게 되었고, 돌봄을 받는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지구공동체라는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느낀 것도 코로나였을 것이다.
전 세계가 팬더믹상황에서 가족, 사회, 국가라는 개념적 선긋기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각 나라는 봉쇄조치를 취하고, 열심히 동선체크를
하며 출입국자들을 관리했지만 코로나는 속수무책으로 확산되었다.
우리는 그냥 다 같이 지구별에 사는 공동체였다.
많은 의료진들은 쉴틈도 없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 채 최전선에서 버티였고,
의료체계의 위기와 공공시설의 부족, 간병인문제등 여러 사회문제도
동시다발적으로 대두되었다.
처음 코로나에 걸렸을 때가 생각난다.
갑자기 목이 따끔거리더니 곧바로 목소리가 잠기고, 열과 함께
온몸이 두들겨 맞는 것처럼 아팠다. 검사하나 마나 '코로나구나! '알 수 있었다.
감기에 잘 걸리지도 않지만, 걸려도 이렇게 아프지는 않은데.....
감기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전 국민의 동선은 병원이건 음식점이건 다 체크가 되었고,
눈뜨자마자 코로나 확진자와 각 세계의 상황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는 시작되었다.
매일매일 아이들 마스크는 새 거로 교체해야 하기에 늘 확보하기 위해 신경써야했고,
외출 후에는 꼼꼼히 손 닦는 것이 생활화되던 시기였다. 그런데 내가 코로나에 걸리다니....
난 주부다. 아파도 바로 누울 수 없다.
온몸이 아프기 시작해 당장 침대로 들어가고 싶은 욕구를 참으며, 일단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내가 아프면 식구들 식사준비는 어떻게 하지?
막내는 아직 어린데 어떻게 일주일이나 혼자서 생활하고, 얼굴도 못 보고 어쩌지?
격리를 하고 나면 약을 타러 누굴 보내나?
내가 너무 아프면 병원에 입원은 할 수 있는 건가?
내게 먹을 거는 누가 가져다 주나? 등등
다행히 삼일을 꼬박 앓고 나니 몸은 차츰 회복되었다.
문밖에서 식구들이 괜찮은지 안부를 묻고, 먹을 것과 필요한 물품을 문밖에 놔두면
내가 들고 들어가는 식이였다. 삼일동안은 식욕도 없어서 약 먹느라 간단히 죽을 먹었다.
안방과 안방화장실을 폐쇄시켰는데, 주로 문틈으로 내 얼굴이라도 보겠다던 막내는
이틀째 저녁부터 코로나에 감염되어 같이 생활하였다. 지금 하는 말이지만 막내랑 같이 있어서
그나마 덜 아프고, 일주일을 잘 버틸 수 있었다.
혼자 있을 땐 끙끙 앓으면서도 누군가 들어올 수 없고, 혼자 일주일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더 힘들었다. 비몽사몽 잠들었다가도 깨어나면 식구들의 위로와 손길이 그리웠다.
밖에서는 식구들 목소리가 들리는데, 문 밖의 상황도 궁금하고 나 혼자 폐쇄된 공간에서
아픈 것이 외롭고, 두렵기도 했다. 그러기에 코로나 걸려도 엄마옆에 있을 수 있어서
좋다고 들어온 막내가 나도 반가웠다.
우린 서로 정신이 좀 드는 사람이 상대를 돌봐주었는데, 상대방의 뜨거운 이마를 찬수건으로 식혀주고,
어디가 아픈지 물어봐주고, 아픈 곳을 서로 만져주며, 껴안고 다시 수면속으로 빠져들었다.
옆에서 같이 아픔을 공유하며 정서적, 감정적으로 위로가 되었다.
코로나를 담담히 버틸 수 있는 저력은 관심과 사랑이었다.
팬더믹사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병과 간병, 사회 돌봄 서비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팬더믹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는
고령화사회로 치닫고 있기에 돌봄에 대한 고민은 절실하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수명은 늘었는데, 병원에서 퇴원 후 갈 곳이 없는 노인분들.
의료 및 사회적 돌봄 서비스도 취약하지만 고령화로 인한 노인 돌봄은
거의 각 가정에서 무노동 돌봄으로 이어지며 특히 딸들의 책임으로
돌아가 사회생활을 접거나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좀 더 단순한 노동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기에 여성들의 빈곤을 더 가중시킨다.
대부분 40대 여성 이후부터 무노동 돌봄 시간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 여성들은
아직 자녀들을 돌봐야 하고, 노년기 부모를 돌보며, 직장도 다녀야 하는 여성들이다.
사회가 변해 가면서 가치도 변해왔다.
어린이, 성소수자, 장애인, 성추행등 쉽지는 않았지만 사회는 변화되었고, 이제
당연히 받아들이는 문화로 정착되었다.
'노인 돌봄'도 이제 사회적 관심과 가치를 찾아야 한다.
옛말에 노인이 되면 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돌봄으로 자라왔고,
돌봄을 받으며 마지막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마을전체가 필요하듯, 나이 들어 취약한 건강상태에서
마지막을 보낼 때에도 마을전체가 필요하다.
우리의 유교사상은 머리카락 한올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거라 자르지 않고
소중히 기르던 문화였고, 연로하신 부모님을 공양하는 것은 당연한 사회적 규범이었다.
하지만 급격한 사회변화와 자본주의 물결 속에 우린 가족 간의 유대관계도, 두레나 마실문화도
붕괴되어 각자고립되어 있다. 이제 가정에서 부모님의 돌봄이 필요한 갑작스러운 사태가 발생하면
가정의 일상은 쉽게 무너지게 된다.
가족이, 친구가, 이웃이 서로를 도와주고, 의존할 수 있는 사회.
그리 멀지 않았던 시대에 우리에겐 그런 사회문화가 있었다. 지금부터라도 그런 사회문화를
연구해야 하고, 경제적으로도 돌봄을 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지원과 어떤 혜택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문화적 규범 속에 의무적으로 떠안게 되는 돌봄에 고민하느라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아무런 예고도, 교육도, 지원도 없는 상태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일은 자발적인 돌봄의 장점들을 느낄 수 없게 한다.
중요한 것은 돌봄은 생명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가치라는 것이다.
'나는 아프신 부모님과 잘 살고 있습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이팅게일의 돌봄방법 간병은 누구나 할수있는 역활 (2) | 2023.10.27 |
---|---|
비판은 나쁜습관을 강화할뿐. 잘했군 잘했어 긍정의 말 (2) | 2023.10.21 |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고,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다. (2) | 2023.10.10 |
아프신 부모님 있으시죠? 우리 같이 고민해요. (1) | 2023.10.08 |
미.용.고.사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0) | 2023.09.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