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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프신 부모님과 잘 살고 있습니다.

미.용.고.사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by momhealer 2023. 9. 28.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

난 지금 엄마와 언니랑 같이 운영하던 한복매장을 정리하고 있다.

처음 가족사업에 늦게 동참하게된 계기는 단순했다.

어느 날 언니가 말했다.

"미란아. 엄청 바쁜데 네가 도와주면 좋겠어. 회사를 관두는 건 어때?"

90년대 한복업계는 화려했다. 2단, 3단으로 염색한 원단에 과감한 동양화풍 그림이나

파라핀염색그림도 인기가 있었고, 염색원단에 수화그림으로 다양하고 개성 있는 그림들이

인기가 있었다.

처음 한복길에 들어선것은 그림에 소질이 있는 언니가 엄마에게 말해 엄마랑 언니가

한복화실매장을 연것이 시작이었다. 

엄마랑 언니는 나중에 큰언니와 같이 한복그림매장을 운영하다 마음이 안 맞아 엄마랑 언니가

따로 나온 상황이였고, 작은언니는 그림과 염색을 같이 작업하며 늘 늦은 시간까지

작업하느라 힘들어했다.

실크한복치마 6, 8폭을 미리 연결하고, 그 위에 커다란 붓으로 몇 번에

걸쳐서 염색을 하고 그 염색한 원단을 고온에서 쪄야 하는 작업은 거의 밤을 새우며 하는

강도 높은 작업이라 남자가 하기에도 힘든 작업만 언니는 혼자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온 염색원단에 직원들 3~4명이  섬세한 그림작업을 해서 한복한벌이 완성되는

노동력이 정직하게 들어가야 상품이 되는 작업이었다.

8여 년 대기업에 다니며 안정된 월급을 받던 나는 내가 필요하다는 언니말에 바로 사표를 쓰고

동참했었다. 가져가는 돈은 거의 없었지만 일은 힘든 만큼 재미있었고,  마끼에 말려있는 원단들이

한복으로 만들어지면 세상에 없던 유일한 창조물을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컸다.

세월에 따라 한복업계는 결혼식에만 입는 옷으로 점차 밀려나고 간소화되면서 실속 있고, 사계절 

입을 수 있는 무난한 원단과 색상으로 대처되었고, 그림은 점차 줄고 원단과 바느질로 개성을 살렸다. 

언니는 무형문화재 스승님께 궁중복식수업을 이수하며 배우고 익혀 입지를 다졌고,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따스한 성품의 엄마는 손님을 주로 상대하시고,

나는 매장을 관리하는 쪽으로 자연스레 업무가 분담되었다. 

 

그렇게 방배동에서만 십여 년 넘게 가인한복매장을 운영해 왔는데...

입원해 있는 엄마와 병실에서 엄마를 돌봐야 하는 우리는 이 상황에서 더 이상 손님을 받는 것이 무리였다. 

우리는 엄마 쓰러지시고 마음으로는 정리해야 하는 게 맞다는 것을 알았지만 정작 일여 년 버티다 끝내

정리하게 되었다.

 

엄마가 정성껏 한 해 한 해 사 모았던 원단들과 아침마다 매장을 돌며 좋은 기운을 불어넣으시며

읊조리던

하나하나 실내인테리어를 우리 손으로 했기에 정리하고자 하는 이성과 마음은 늘 따로 놀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들락거리던 이 공간에서 아이들은 자라고 엄마는 대부분의 세월을 보내셨는데

나 혼자 정리하려니 엄두도 안 나지만 제일 힘든 건엄마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곳을 원상 복구하고,

엄마의 돌아올 곳을 없애는 듯해서 너무 힘들다.

 

그러다 발견한 엄마의 보내지 않은 편지글.

 

언제 쓴 글일까?

아... 내가 남편하고 힘들어할 때 쓰신 글일까?

아이들 문제로 고민할 때 일까?

티가 많이 났었나? 하기사 짜증을 엄마에게 냈겠지. 가족끼리 사업을 하면 늘 붙어 있다 보니

감정의 필터가 작동을 안 한다는 거다. 

나이가 오십이 가까워지는데 엄마의 교육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다 내 탓인 것을... 여리고 자식이 늘 우선이였던 우리 엄마는 본인 탓을 하며 속상하고 괴로워하셨나 보다.

난 내 속 시끄러운 것만 신경 쓰느라 미처 엄마를 챙기는 살뜰한 딸이 못되었고....

 

엄마.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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