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렌스 나이팅게일 앞에는 늘 '백의천사'라는 칭호가 붙는다.
내 어린 시절 동화책 속 나이팅게일은 램프를 들고 앞장서고 그 뒤를 많은 간호사들이 뒤따르는 그림이었다.
다정하고 온화한 나이팅게일은 어려서부터 아픈 동물들을 보살피는 걸 좋아했고 크림전쟁에서
많은 부상당한 군인들을 돌봐준 수호천사이자 현대 간호학의 선구자라는 것이 내 어린 시절
나이팅게일에 대한 책 내용이었다. 그러나 나중에야 그녀가 용감하고, 탁월한 사회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크림전쟁당시 병원시설에 대해 '완전히 혼란스럽고
비위생적이며 비인간적인 생활환경'으로 인해 상처보다 감염으로 더 많은 군인들이 목숨을
잃는 것을 보고 환경개선을 위해 노력했으나 기존의 남성위주의 군대와 의료계에 여성혼자의 힘으로
관행을 깨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한눈에 문제점이 파악되는 편리한 도표와 통계표를 이용하여 관행적으로 이어져온
병원의 지저분한 환경을 개선하여 위생적인 의료시스템을 확립하기에 이른다.
그녀는 용감하고 탁월한 의지가 굳은 의료서비스개혁의 선구자였던 것이다.
나중에는 여성성을 강조한 자신의 유명세에 대해 '구원의 천사 운운하는 허튼소리'로 일축해
버리기도 했다고 한다.
여성들이 대부분 돌봄을 맡게 되는 건 양육의 방식 차이 때문은 아닐까?
나의 일상생활에 엄마를 돌보는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쏟아져 내린 일이었다.
평상시 부모님이 아프면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의논은 없었다. 엄마가 쓰러지고
나는 어느새
"보호자세요?"
"누가 간병하시나요?"
라는 의료진들의 말에 "네. 접니다"라고 말하면서 서서히 그 역할에 고정되었다.
의식적인 결정이라기보다는 슬며시 벌어진 일이었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었다.
병원에 있다 보면 90% 이상이 여성이다. 남자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 대다수도 여성이다 보니
남자간병인은 어쩌다 보기 드물게 만나게 된다.
기억에 남는 남자간병인이 있었다.
어느 날 엄마숨소리가 거칠어서 산소포화도를 재보니 91~93 사이였다.
수치가 위험하기는 했으나 아직 90 초반에서 왔다 갔다 해서 가정간호선생님과 의논하고
간병인 선생님과도 통화하며 상태를 지켜보기로 했다.
좀 더 호흡하기 편하게 침대 상체는 높이고 자세변환도구로 자세도 다시
잡아 보고, 석션 (가래흡입)도 했으나 90대 이하로 떨어졌다.
아.... 이젠 응급실로 가야 하는 상황이다.
급하게 응급차를 부르고, 미리 준비해 둔 커다란 가방 3개를 차에 싣자 이를 본 응급요원이
우리의 짐을 보고 놀란다. 엄마는 기저귀만 3가지 종류로 일단 하루치만 여유 있게 챙기고,
석션하는데 필요한 가정용 셕션기, 카테타, 위생장갑, 식염수를 챙겨야 하고, 자세변환용구와
티슈등 하루만 있더라고 꼭 필요한 용품만 챙겨도 큰 가방이 세 개가 필요하다.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움직이면서 엄마의 기록이 많이 남아 있는 서울대로 갔으면
했으나 응급실에 침상이 없다는 얘기에 재생병원 응급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집에서 준비해 간 현재 먹고 있는 약봉투, 약 처방전, 엄마병원기록지, 마지막 퇴원 시 소견서등을
제출하고 하염없이 기다림이 이어진다. 엄마몸 이곳저곳에 의료용 줄들이 연결되고, 피를 뽑고, 사진을 찍고...
어쩌다 들리는 바뀐 의료진들 얼굴을 볼 때마다 몇 번 같은 말들을 되풀이하게 되는데,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건지 듬성듬성 전달받고 들어와 또다시 묻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은 입원하게 될 '과'가 결정되기까지 지속된다.
응급실이 한가할 때가 있을까? 엄마의 응급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구급차가 빨리 도착할까,
들어갈 수 있는 응급실이 있을까? 는 늘 걱정거리이다.
매일 응급실을 찾는 환자들은 발생하고 그 지역에서 발생하는 응급환자를 받기에 대형병원의
응급실은 늘 부족한 침상과 환자수에 비에 적은 인력으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의료진들을 이해한다.
그러나 하루를 넘겨도 병상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면 아파서 병원에 왔으나
더 상태가 나빠질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응급실의 병상은 딱딱하고 좁아서 자세변경도 힘들다.
엄마는 전신을 움직이지 못하기에 수시로 자세를 변경해야 하고, 대소변도 다 침상에서 처리해야
하는데 집에서 준비해 간 몇 가지 자세변환도구와 이불로 엄마의 몸을 잘순환하게 무리 없이
돌봐드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조의자도 없이 서서 석션을 하고, 기저귀를 갈고, 수시로 자세변환을 하며 초초히 상황을 기다려야 하는
간병하는 사람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응급실에서 먼저 지치게 된다.
다음날 제일 빠르게 입원할 수 있다는 노인병동의 간호사실 옆 대기실에서 반나절을 보내다
드디어 병실로 입원하게 되었다. 5인이 같이 쓰는 병실은 모두 엄마와 비슷비슷한 나이대였고,
다른 병원이나 병실과 다르게 간병인이 주로 가족이었다.
가족이 더 많은 간병인이 있었던 이유가 병실이 간호간병서비스가 되는 병실이어서,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는
환자분들은 간호사 및 간호조무사, 지원인력팀이 도움을 주고, 우리 엄마처럼 혼자 움직일 수 없는 분들은
단기입원만 가능한 병실이라 가족분들이 간호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병실 분위기도 편안하고
서로 돕는 분위기였다. 그중 한 분이 남자 간병인이었는데 장모님을 돌봐드리고 있었다.
아들도 아니고 사위가 간병을 하다니....
정년퇴직을 하고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장모님이 입원을 하게 되어 쉬고 있는 본인이 간병을 하겠다고
얘기하고 간병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도 재생병원은 처음이었는데, 다른 병원의 5인실에 비해
유독 작아서 옆침상과 커튼을 치게 되면 간병인침상의 3/1 지점에 커튼이 지나가는 구조였다.
병실이 부족해 급하게 5인실로 개조한 병실이라 한다.
여자 환자와 여자 간병인들만 있고 유독 비좁아 옆침대와 간격도 좁은 병실에서 남자가 간병을 하겠다고
들어온 그분의 눈에는 그냥 아픈 장모님과 간병할 다른 식구들이 없기에 본인이 들어온 것뿐이었다.
흔히 가족 내에서 환자가 발생하면 돌봄이 여성에게 돌아가는 것을 당연시하고 암묵적으로 강요되는
분위기인데 자발적으로 간병을 하러 들어온 분이 그것도 남성분이라 기억에 남았고 간병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계기였다.
나중에 남동생과 교대하고 나서 물어보니 같은 병실에 남자분이 있어서 지내기 수월했고,
많이 가까워졌다고 한다. 나도 같은병실에 마음 맞는 간병인이 있으면 이심전심 위로와 도움을
받으며 좀 더 수월하게 지낸 경험이 있기에 돌봄 환경에서 이런 생각을 가진 분들의
참여가 높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여성이 선천적으로 남성보다 양육과 돌봄을 더 잘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로 여성성과 공감능력을
말하는데 남성이 자녀를 돌볼 때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3분의 1 가량 낮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우리는 돌봄을 통해 공감과 인내심 그리고 생명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엄마가 숨쉬기 힘들었던 이유가 오른쪽폐에 물이 차서 물을 빼야 하는 시술을 권하였고, 그러면서
3주 정도 병원에 머물면서 둘째 언니, 나, 남동생이 일주일씩 돌아가며 엄마옆에서 간병을 하였다.
그때 같이 병실에서 돌봄 역할을 하시던 사위분과 엄마침상 맞은편에서 돌봄을 하던 며느리분과는
기간이 서로 엇비슷하게 맞기도 했고, 가족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기저귀도 서로 빌리고, 잠깐씩 목욕을 위해 자리를 비울 때는 서로 환자분들을
봐드릴 수도 있었고 식사 때는 반찬도 나눠먹으며 고달프고 힘든 시기를 같이 버티고, 퇴원 후
거처에 대해 고민이나 간병의 어려움등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환자를 보살피는 간병의 역할은 언제 어느 때고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현실이다.
지금은 간병하는 입장이지만 우리는 언제든 간병을 받는 입장도 될 수 있기에 지금 간병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환자의 각 가정으로 개인들에게 지나치게 치우쳐 있는 무거운 간병의 역할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사회돌봄시스템을 좀 더 효율적을 운영하는 방법을 찾아보자.
노인건강보험의 많은 병원의료비 지출을 환자분들이 가정에서 머물면서도 사회적 시스템으로
돌봄을 분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것이 비용면에서나 인간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부분에서도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어려운 병실생활에서도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고, 같이 환자를 돌봐줄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간병하는 분들이 좀 더 효율적으로 환자분들을 돌봐 드릴 수 있고, 간병인들의 삶의 질도 높일 수 있었다.
재가간병을 원하는 환자분이나 보호자분들이 좀 더 쉽게 마음을 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재가환자분들의 병원방문을 가정방문으로 바꿀수도 있고 - 유독 피부가 민감한 엄마는 종종 피부발진을
일으키는데, 붉은반점이 수포로 변하며 정신없이 번져 가정간호선생님께 의논했으나 대면진료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말에 사설 119를 불러 제일 가까운 피부과를 찾아갔다. 병원에 간 것도 힘들었지만
집으로 모셔오는 것도 일이라 좀 기다려달라 사정을 얘기했으나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하여 다시 사설
119 부르고 되돌아오는데 받아 든 것은 연고 하나였다- 재활이 필요한 환자분들이 가까운 재활센터를
이용할 수 있는 지역재활센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나 홀로 환자의 위급상황에 대처해야 한다는 두려움과
책임감. 고립된 간병생활을 해야 하는 부담감과 가중되는 피로를 줄일 수 있을 때 좀 더 많은 분들이
마지막 삶의 여정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말이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정작 간병을 하는 사람들은 환자돌보기도 급급하여 하루하루가 떠밀리듯 지나가고
생각이라는 것을 제대로 정리하기가 점차 힘들어지니 말이다.
일명 로즈 다이어그램이라 불리는 이 차트의
각 꽃잎은 매달전쟁터에서 사망한 숫자를 나타내는데
꽃잎 가장자리의 넓은 부분은 질병에 의한 사망자, 안쪽은 부상에
따른 사망자, 나머지 중간 부분은 기타 원인으로 사망한 사람을 뜻한다 합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질병 사망자가 얼마나 많은지 볼 수 있도록 그림으로
만들어 본토 영국에 보냈습니다.
이 차트를 본 영국의회와 국민들은 야전병원의 투자필요성에 공감하고
현대보건학의 기틀이 만들어졌다 합니다.
- (그냥 하지 말라)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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