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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프신 부모님과 잘 살고 있습니다.

가정간호 추석차례상 가족과 함께하는 의미

by momhealer 2024. 9. 17.

 

엄마가 퇴원 후 5번째 추석을 맞이하고 있다. 집에 처음 와서 첫 추석을 보낼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아빠가 엄마를 보며 안타까워하며

"여보. 정신 좀 차려봐요. 오늘이 추석이에요~~ 애들이 다 모였어요......" 하시며 말끝을 흘리셨는데

안타까워하고 늘 조바심 내던 아버지가 먼저 차례상을 받을 줄이야....

어제 준비해놓은 음식들을 꺼내 놓는다.

아이들도 다 커서 차례상 차리는데 손발이 척척 맞는다. 아들은 병풍과 상을 꺼내오고, 딸아이는 가지런히 제기 위에

음식을 담는다. 음식 담은 제기를 상위에 홍동백서, 조율이시에 맞게 배치하고 한쪽에서는 엄마도 한참 준비 중이다.

아침에 목간거즈를 갈고, 내관과 가온가습 티자관 교체하고, 눈과 얼굴 깨끗이 씻고 기저귀도 살피면 드디어 식사를

하기 위해 휠체어에 앉는다. 둘째 언니가 휠체어에 앉은 엄마를 석션칫솔로 치카치카를 시작한다.

환자가 있는 집은 이렇게 연휴가 시작되면 하루 3~4시간씩 돌봄을 해주는 간병선생님도 쉬기에 식구들이 전담하는 시간도

길어진다. 차례상 준비하는 식구와 엄마 돌보는 식구로 나뉘는데 유동적이다. 식구가 모이면 전담하는 사람도

마음은 좀 더 편안해진다. 환자를 전담하는 사람은 혼자서 환자와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환자상태를 같이 의논할 수 

없어 혼자 결정하는것에 부담감도 커지고 쉬 지치고 사회와 단절되는 느낌을 항상 가지고 있다. 

북적거리며 다들 힘을 보태니 금세 차례상도 차려졌다.

엄마의 휠체어 자리는 차례상이 잘 보이는 곳으로 정하고 조상님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추석차례를 지낸다.

우리가 어찌 자신만의 힘으로만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지금까지 잘 살아왔음은 나를 사랑해 주신 부모님이 계셨고,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지인들이 있었고,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힘든 시절에도 웃을 수 있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또 나아갈 수 있었지... 작게는 가족이고 크게는 사회와 우주의 도움이 있었다.

절을 하며 새삼 감사한 마음이 퍼져나간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추석차례를 지내는 것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고 음식상차림이 여성들에게 치우치다 보니 가정주부와 여성들에게

힘들고 스트레스가 심한 것도 맞다.

그 추석이라는 전통 자체가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그 전통을 어떻게 형편에 맞게 형식과 의미를 조화롭게 치르느냐가

앞으로는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른 아침을 먹으며 남동생의 제안으로 낱말 맞추기 게임을 하기로 했다.

모든 게임이 재미있으려면  돈을 걸어야 제맛. 남동생이 거금의 상금을 걸고 단어를 말로 설명하여 알아맞히는 게임과 말없이 몸으로 표현하여 맞추는 방법 2가지로 어른 + 자녀가 같은 편을 먹고 시작했다. 의외로 열띤 분위기에 방해공작도 

오고 가고, 목청도 높아지고.... 단독주택이니 다행이다.

엄마는 비위관식사라 한 시간 정도로 맞춰서 식사량을 조절해 드리는데, 반시간만에 식사가 다 들어갔다.

으악~~~ 이런이런. 환자돌보는 집은 늘 한쪽 안테나는 환자에게 고정되어 있지만 간혹 다른식구들을

믿고 있다가 서로 화들짝 놀란다. 

다시 게임시작. 

조신하기로 조선시대 사대부 맏며느리 못지않은 둘째 언니는 엄마간병을 전담하고 나서는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거나

나서는 것에 늘 한발 뒷전으로 물러나 있었다. 그런 둘째 언니가  '몸으로 말해요'에서 적극적으로 바닥을 기며 몸으로 표현하는 것에 온 식구들이 빵 터졌다. ㅎㅎ

막내가 자근자근 설명을 침착하게 잘해서 새로웠고,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단어가 생각이 안 나 동동거리기도 하며

세대 간 씨실과 날실로 엮인 날이었다

남동생의 제안으로 또 다른 재미를 느낀 추석.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추석만 같아라!'라고 말하던 것처럼

큰소리로 웃고, 목청도 높여보고, 맛있는 것을 같이 나누어 먹은 오늘. 엄마가 곁에 있어서 가능한것임을

안다. 우리엄마~~ 참 대단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