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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프신 부모님과 잘 살고 있습니다.

가족공동체- 함께 나이들어 가기

by momhealer 2024. 5. 19.

함께 나이 들어가는 우리 형제들 중 오늘은 큰언니 생일이다. 

62세. 환갑이라고 호들갑 떨었던 것이 엊그제인데, 이제 언니도 60대의 나이를 차근차근 살아내고 있다.

큰언니는 유독 먹는것에 관심이 많다.

텃밭도 아빠 돌아가시고 나서도 혼자서 도맡아 쌈채소와 고추, 토마토, 가지, 오이 등은 봄에 모종을 심고, 가을에는

무, 배추며 김장거리를 심어서 일년에 2번 밭에서 농사를 짓는다. 농사짓는 분들은 다 아는 것처럼 모종 후에도

밭의 일은 계속 손을 놀려야 한다. 해충도 잡고, 물도 주고, 풀도 뽑고, 제때제때 따주어야 한다.

여름으로 갈수록 푸성귀는 풍성해지고 질릴 때쯤 서늘해지는 바람과 함께 밭의 작물들도 옷을 갈아입는다.

나이서열이 제일 위인 큰언니는 주로 우리집의 먹거리를 주관한다. 그래서 먼저 몸의 변화를 느낀 큰언니가

몸의 변화에 맞게 식단도 바꾸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탈 탄수화물과 저당음식 그리고 채소위주의 자연식

식단으로 요리를 하고 우리들도 큰언니의 식단에 맞춰 자연스럽게 채소위주의 식단과 저탄고지 음식들로 먹으며

건강식으로 몸도 편안해 짐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엄마, 아빠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소회가 안된다, 나가서 먹는 음식들은 속이 거북하다, 하루 2끼가 편안하다... 등등

말씀하시던 것들을 이제 우리들이 느끼고 몸으로 체득하고 있다.

그래서 다 같이 모이게 되면 식단도 우리들 2세대의 식단과 3세대가 좋아하는 식단을 따로 준비하게 된다.

아직 소화에 무리가 없고, 입맛에  찰싹 달라붙는 가공식품들을 더 좋아하는 3세대도 언젠가 본인들의 몸이

더 받아주지 않을 때 느끼게 되리라.  그러고 보면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보고, 몸소 깨닫고, 실천하며 다음세대에게

또 보여주는 역할의 순례를 이어오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이번해에는 부처님 오신 날이 큰언니 생일이라 뜻깊은 날 저녁에 다 같이 모였다.

생선, 참치회와 회덮밥 그리고 케이크.

엄마도 저녁때에 맞춰 휠체어로 이송하고 식사를 하기 위해 거실로 모시고 나왔다. 

" 엄마! 나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엄마~~ 언니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엄마 짱. 이렇게 4형제를 낳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 명이라도 덜 낳았으면 어쩔 뻔했어~~"

짝짝짝~~

둘째 언니가 엄마 눈꺼풀을 들어주니 ( 혼자 힘으로는 눈뜨기 힘들어하신다) 눈으로 큰언니 얼굴에 초점을 맞추고 

모처럼 또렷이 쳐다보시며, 우리들 목소리와 박수 소리에 미소를 머금으신다. 

엄마는 경관식을 드시고, 우리도 같이 식사를 하며 3세대 대표로 막내 중2 보리만 참석하게 된 식사자리.

아직은 어색하다. 언니 아들은 작년에 군대에 입대하고, 우리 집 첫째는 저녁에 약속이, 둘째는 학교기숙사에 있다.

3세대는 점점 참석하는 날들이 줄어들겠지... 아직 손길이 필요한 막내 보리가 우리 곁에서 어느 정도 있다가 보리도

자신의 삶을 살아내겠지.... 그런 생각이 드니 같이 있을 수 있는 모든 순간들이 소중하고 맘껏 즐기자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덧 아이들 중심이던 식단과 대화내용이 서서히 우리들의 식단과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그래도 우리 2세대는 엄마 돌봄으로 인해 같이 뭉쳐서 생활하게 되어 다른 집들과는 다른 생활형태를 꾸리게 되었지만,

그래서 빈집 증후군이라던지 중년의 외로움은 잘 못 느낀다. 

언니에게 생일 촛불을 끈 후 소원을 뭘 빌었는지 물어보았다.

" 내 소원은 늘 너희들 다 건강한 거야. 아프지 말고 건강하자!~~"

올해는 유독 4월부터 내가 대상포진에 걸린 것을 필두로 둘째 언니가 20여 년 만에 자동차 사고가 나고,  언니는 무릎관절염이 도지고 막내 경일이는 속이 안 좋아 종합검진을 받았다. 

엄마를 돌보고 아빠를 먼저 보내 드리며 늘 노화와 질병과 생의 마지막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다 보니 다들 건강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다. 

오래 사는 것보다 내가 내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삶의 질이 중요함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누구 하나 그 속에 담긴 의미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어느덧 중년으로 접어든 우리 2세대는 부모님을 간병하고 자식을 돌보고 있는 세대로 우리의 노년은 그 누구의 손도 아닌 우리 스스로 자립적인 삶을 살다 마무리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절실히 바라기 때문이다.

 

뭉쳐있다 보니 생일만 챙겨도 거의 다달이 축하의 날이 끼여있고, 맛있는 것이 생기면 수시로 모여서 풍성한 저녁을 즐기니

우리 엄마가 우리를 뭉쳐서 살게 하는 원심력이 되어 주는구나!  오늘은 더 깊은 감사의 마음이 든다.

자식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함께 나이 들어가는 형제지간은 말하지 않아도 알아지는 것들이 있다.

같은 부모아래서 자라면서 형성된 성격과 생활습관,  비슷한 시대를 살아낸 동질감과 문화환경, 그리고 같이 나이 듦에 대한 신체적 변화와 가족 내 온갖 대소사를 같이 대처해 나가면서 쌓이는 동지애 등 나이 들수록 형제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우리 집에서 사회적 문제 해결능력이 가장 뛰어난 큰언니.

어찌 보면 언니도 제일 먼저 자식으로 태어나 그 역할에 계속 노출되고 강화되면서 사회적 해결능력이 개발된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서 나름 첫째에게 바라는 기대치가 있는 세대를 살았고, 첫째로써 대접도 받았지만 무게도 가볍지 않았으리라.

우리 형제들을 보면 내가 내 자식들에게 3형제를 만들어준 것이 가장 큰 유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함께 나이 들어가며 좋은 날 같이 기뻐하고 힘든 날 같이 위로해 주며 서로옆에서 지켜주는 독수리 4형제를 만들어주신

우리 부모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드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