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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야기

감기처럼 그냥 지나가기를 기다릴뿐.

by momhealer 2024. 8. 18.


여지니랑 헤어지는 날은 늘 싸하니 내 몸 한 모퉁이가 떨어져 나가는 상실감에 시날린다.
그렇다고 헤어지고 또 만남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본능과 같은 이 감정은 이성도 어쩔 수 없다.
감기처럼 그냥 앓고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이십 대에 오직 내가 바라는 것은 '독립'이었다. 스스로 세상을 향해 나 혼자 뚜벅뚜벅 걸어가는 '나'를 꿈꾸며 집에서 출가를 꿈꾸었다. 운 좋게 한 번에 고등학교 졸업도 전에 대기업에 입사를 하게 되었고 친구들은 졸업식에서 대학생활에 들떠있을 때 난 빨리 세상에 나가서 내 힘으로 독립을 하고 온몸으로 뭐든 경험할 생각에 피가 끓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배정된 나의 자리에 앉아 출근하는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인사를 건네고, 뉘엿뉘엿 어둠이 내리는 사무실에서 밤의 어둠을 밝히는 빌딩의 한 사무실공간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하루, 이틀, 한 달, 석 달...
"너무 일찍 나오지 말아요.
회사는 오래 다녀야 하잖아요. 너무 애쓰면 힘들어요. 힘들면 오래 못 다니고... 그냥 할 일만 할 만큼만 해요..."
그날도 제일 먼저 출근해 사무실 정리를 끝내고 들어서는 직원분께 반갑게 인사를 건네자 내게 한 말이었다.

나의 인식에 첫 사회적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 말이다.
내 인사가 과했나? 정말 반갑고 좋은데..
나는 늘 이렇게 할 수 있는데?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눈치껏 하라는 건가? 그다음부터 그 직원을 꺼려했다.
반년이 넘어가며 그 직원이 내게 전하고자 하는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몇 개월이면 숙달할 수 있는 일이었고 내가 더 업무를 숙달하고 싶어도 내게 기대하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남직원들 회의 시 커피를 타고 방해되지 않게 전화를 받아주는 역할이었다
유달리 전화가 많은 부서여서 전화를 빨리빨리 받아 담당자에게 연결해 주는 일을 여직원이 하길 바라고
업무가 밀려도 당연히 근무시간에는 전화를 받고 정작 업무는 야근하며 처리하는 식이였다.
단순반복업무는 쉽사리 열정을 빨아먹었고 이 견고한 틀은 내가 몰랐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숙맥이었을 뿐 나는 자본주의가 뭔지
고졸이 갖는 사회적 위치가 어떤 건지 아무것도 모르는 이상주의자일 뿐이었다.
집에서 독립을 말하기에 엄마는 늘 버스정류장까지 마중을 나와 나의 하루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즐거워하셨다.
출가에 대해 언뜻 이야기한 듯도 하지만 너무 낙담해하는 엄마모습과 단출해진 가족구성원에 생활비까지 내고 나면 나를 위한 공간을 꿈꾸기에는 이기적인 생각이라는 죄책감에 포기했다.
  그리고 근 50여 년을 나는 늘 엄마와 같이 또 근처에서 살고 있다.
엄마가 아이들 어렸을 때 잠시 떨어지는 것에도 눈 붉히며 애달파하는 모습이 이해도 안 되고 너무 감정적이라고 생각했다. 늘 붙어있는 딸인데 손자, 손녀도 다 같이 키웠는데 왜  청승일까... 참....
나는 내 젊은 시절 출가를 못해보고 결혼 후에도 같이 또 근처에서 살다 보니 '독립'적인 생활에 목말랐었다.
어른이 되었는데 육아에서도 나 혼자 결정하기가 힘들었다. 가족의 울타리는 소중했지만 너무 밀접한 관계는 쉽게 감정적으로 상처 주고 상처받았다.

엄마의 나이가 되어가는 지금.
이제야 알게 되는 감정과 기분이 있다.
그 시절 아빠 없이 엄마삶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자식이었고, 또 그 자식의 자녀가 삶의 목적이자 기쁨통로었음을...

내 자식으로 인해 알아가는 소중한 감정들이다.
어머니 이제 당신을 이해합니다.
여진이를 보내는 날 나는 내 젊은 시절
어둠과 케케 묶은 감정을 비로소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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