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인 딸아이가 기숙사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날.
이 시간이면 기차를 타고 있겠구나
도착했을 거 같은데
짐이 많지는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으로 전화를 기다리다 궁금해서 전화를 하니 잠긴 목소리로 약간 짜증 난다는 듯이
".... 졸려 죽겠는데 이모에게 전화 오고, 엄마에게 전화 오고.... 왜?..."라는 말에
뭐 먹고 싶은지 묻고는 얼른 끊었다.
이것저것 주문해 놓고, 애들볼 생각에 추운 퇴근길 훌쩍이며 도착해 보니
해외여행 갔다 온 아들놈, 기숙사에서 올라온 딸내미의 캐리어 2개가 현관에서 나를 반긴다.
조용한 집안, 각자 자기 방에서 잠들어 있다.
슬쩍 흔들어 깨워보니 밥생각은 없단다. 그래 밥생각 가득한 내 뱃속이나 걱정하자. 나 혼자 먹기 위해
고기를 볶고 야채를 씻고 된장국을 퍼서 식탁에 앉았다.
기대한 저녁분위기와는 다른 식탁에 나 혼자 먹으며 언제부턴가 나만 묻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하루가 어땠는지
기분이 어떤지
뭐가 먹고 싶은지
힘들지 않은지
나는 계속 묻고, 아이들은 단답형이다.
11시쯤 한놈이 일어나니 소소한 소음이 집안에 차오르고 다른 얘들도 일어난다.
같이 식탁에 앉아 주전부리를 하다가 아들의 권유로 '루미큐브'를 시작하게 되었다.
약간 소란스럽고, 야유와 빈정도 오고 가고..... 오래간만에 아이들 셋이 다 모여 4명이 꽉 차게 루미큐브를 한 것도
오랜만이다. 첫 번째 판은 아들의 승리로 돌아갔고, 막내가 꼴찌가 되었다. 다시 한판을 외치며 시작된 판은
첫판보다 더 가열된 승부욕과 이번판에 걸린 설거지를 피하고자 임전무퇴 자세들이다.
'엄마, 아직도 정리를 안 했어, 빨리 해.... 말은 고만하고...'
딸아이의 지적에 판에 숫자를 세우던 나는 "어~~ 잠깐만...." 하며 숫자조합을 맞추는데
"엄마는 늘 늦잖아. 빨리 좀 해... 기다리자나...." 한다.
....... 판이 돌아가면서 딸아이 순서에서 늘어지는 모양새가 눈에 보이자 미운생각이 든다. 자기도 늦게 내는걸
알까... 남에게 모라고 그러면서....'라는 생각에
"없으면 그냥 패스해~~ " 미운마음에 몇 번 재촉도 했다.
이번에도 승리는 아들이... 꼴찌는 막내가 되었다.
막내는 진짜 짜증 나는 얼굴로
"이번판은 뭔가 잘못됐어.... 내가 더 가져간 거 같아....". 라며 엄마보다 내가 더 많이 내놨는데,
판에 남아있는 개수가 너무 많은 게 이상하다며 다시 한판 더 해서 결론을 내잔다.
막내가 다 모이는 오늘을 기다리며 어제 환영의 쿠키도 만든 모습을 본 나는 안쓰럽다.
"그럼.... 우리 한판 더 하자" 내 제안에 냉큼 둘째는 본인은 안 한다고 딱 선을 긋고, 첫째는
"진짜 한번 더 하고 싶어?" 한다.
"그래... 보리가 하고 싶으면 한번 더 하자" 보리를 달래는데 둘째가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수신호를 한다. 벙쩌서 쳐다보자 둘째가
"엄마 왜 이랫다 저랬다 해, 난 안 한다고, 엄마 마음대로 말하지 마"한다.
"내가 너에게 하자고 그랫니? 하고 싶은 사람들 같이 한다고 " 차게 말하고 나니 큰소리 나거나 식구들이
투닥거리는 걸 제일 싫어하고 눈치를 보는 보리 얼굴이 더 구겨졌다. 나도 마음이 상해 대강 정리하고 자리에 누웠다.
눈물이 난다.
이 눈물은 무엇일까?
가슴이 먹먹하고 화도 나고, 답답한 거 같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가 보다.
나는 다 같이 오랜만에 모여서 좋았고, 즐기자고 한 게임에 속상한 보리를 달래 주고 싶었다.
나에 대한 비판이나 내가 하는 말에 건의가 아니라 비난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유연한 건지 당황스럽다.
쉽게 간파당하는 나의 어색한 높이의 말투와 눈물을 참기 위한 깜박임은 나도 당황스러워 상황을 피하기
급급하게 만든다.
나의 관심이 너무 무거운가?
내 말들이 지겨운 잔소리더미 인가?
오늘 책상 위에 리본포장해 놓은 책선물을 본 딸아이 반응이 생각난다.
" 엄마... 이런 책은 내가 좋아하는 책이 아니야. 엄마나 읽어...." 좋은 책이니 한번 읽어보라 재차 권하자
"그럼 내가 좋아하는 선물을 사줘야지.. 엄마가 좋아하는 거 말고... " 하더니 쓰레기 정리하듯 책은 나에게
주고, 리본은 돌돌 말아 정리해 버렸다.
내가 아빠에게 자주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빠가 원하는 것을 하지말고, 상대방이 원하는것을 해주세요"
엄마 간병할 때 병원에 잠깐 들른 아빠는 종종 밥 사 줄 테니 식사하러 가자고 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말해도 늘 아빠가
고집하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그 자리는 끝나게 되는데, 어쩔 땐 정말 난 먹고 싶지도 않은 음식이었다. 그럴 땐 먹고 나서도
감사한 마음보다 아빠가 먹고 싶어서 먹자고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얘기를 하다 보면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 소통과 훈계로 상대방이 티 나게 하품을 하고 딴 행동을 해도 본인 할 이야기는 끝까지 다 하는 분이셨다.
아빠는 나에게 몸에 좋은 것을 먹이고 싶으셨겠지....
아빠는 상처도 모른다고 생각한 내 행동에 아빠도 외롭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는지도.....
나의 외로움이 상대에게 투영되는지도...
나의 자격지심이 상대의 직설적 말투를 비난과 비판으로 받아들이는지도...
내가 싫어했던 부모의 모습을 아이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느껴져서 인지도....
그 모든 것이 어제 나의 눈물이 되어 흘렀다.
부모가 아이들의 안식처이길, 내게 와서 쉬었다 갈 수 있는 넉넉한 품이 될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감정쓰레기를 버리는 곳으로 만들지는 말자. 소통과 대화를 원하지만 비난과 지적을 바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자. 자식의 삶이 소중하듯이 부모도 지지받고, 관심받고,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을 종종 말하자.
내가 어리고 미숙하여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 드렸다는 것을 나이 들어 깨달아가며 가슴 아파하는 경험을
치르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고, 나 스스로 아이들과 오래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 필요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변하고 나도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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